여행과 나날

가게 식탁 건너편의 여자아이 둘이 같은 반 친구의 남자친구가 매우 잘 생겼다는 것, 실은 모자 쓸 때만 멋있어 보이는 것인지를 두고 토론한다. 저 아이들은 고작 기말고사가 끝났다고 개운해한다. 곧 마라탕 사장님의 아들이 가게를 찾아와 엄마에게 마작 모임 구성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. 마라탕집 스피커에는 지오디의 촛불 하나가 나온다. 뜨거운 내 마라탕엔 메추리알과 완자와 죽순 연근 배추가 섞여 있다. 활화산 같은 것을 삼키는 동안 건너편 애들의 대화주제는 중간고사와 청소시간 때 담임의 만행으로 바뀐다. 사장님은 아들에게 마라샹궈와 공심채볶음을 내준 후 같이 밥을 먹으며 이번 기말고사 성적을 추궁한다. 성적이 아직 다 나오지 않았다고 둘러대다가 통하지 않자 OMR카드를 잘못 썼다고 실토한다.

지오디에 이어 바비킴 음악이 나온다. 알 수 없는 셔플 방향을 읽다가 그릇을 놓쳐서 마라탕 국물이 사방에 튀었다. 사장님이 괜찮다며 곧바로 새 접시를 갖다준다. 가게 밖 화장실에서 태극기 3개를 주머니에 꽂은 히키코모리 청년이 보인다. 나는 이제 기말고사가 끝났다고 마라탕을 먹으며 개운해하지 않는다. 희망도 잔소리처럼 여겨 비관한다. 내 의식은 마라탕처럼 한데 뒤엉켜 있고 나는 가끔 덜어낼 그릇을 손에서 놓친다.

3호선 지하철 안은 사람들의 두꺼운 옷차림 때문에 충전제에 포박된 것 같다. 역사를 나와서 버블호떡을 사서 먹었는데 날이 추워 버블호떡이 차갑다. 레코드 가게에서 패티스미스 오원더 키린지의 앨범을 샀다. 음반이 놓인 선반을 뒤지다가 난데없이 니켈벡이 듣고 싶었다. 하지만 내가 찾는 그 앨범은 없다. 가게에게 말했는데 앨범 이름을 몰라도 커버(앨점 제목은 모르는데 그 시원한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차)를 묘사하자 그 앨범이 뭔지 당연히 안다고 곧 구비해놓겠다고 약속한다. 레코드 가게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애플파이를 사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다.

카페 오디오에는 노라존스의 최근 라이브 앨범이 나온다. 가게 창 밖 차게 식은 도로가 팻매스니의 Offramp 커버와 닮았다. 나 역시 그런 갈림길에 놓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. 살아낸 방식이 끝나가고 아직 달리 살아갈 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. 가게는 좁고 곳곳에 식물과 손수 뜬 것 같은 가방 커피머신의 습기 그리고 뿌연 가습기 그릇 닦이는 소리 체리향 나는 뜨거운 커피가 있어 깊은 호수에 있는 것 같다. 간다는 소리도 없이 잔 놓고 가버리는 건너편 손님 아저씨는 담배를 피고 다시 돌아온다. 이어폰을 빼고 가만히 있는다. 분리할 수 있는 것을 분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무렵, 그녀가 찾아와 한국시니어셔플댄스 협회 사람들이 오늘 회사를 점령한 이야기를 한다. 창밖의 진눈깨비는 곧 눈이 됐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주 휘청거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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